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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천하는 인천책·(6)] 김윤환 서울연구원 연구원-이연경·문순희·박진한 '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

입력 2022-08-31 19:03 수정 2022-12-08 14:57

'도시의 삶' 과거와 현재 잇는 '기억의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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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 이연경, 문순희, 박진한 지음. 한국근대문학관 기획. 북멘토 펴냄. 308쪽. 2019년 12월 30일 출간
얼마 전 SNS에서는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큰 이슈였다. 한 카페에서 올린 행사 취소 안내문에 쓰인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두고, SNS의 일부 사용자들이 '심심한'의 뜻을 '지루한'으로 오해해서 올린 반응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명징하게 직조해낸' '한줄평' 이후 몇 년 사이 우리는 이런 해프닝을 자주 겪고 있다.

혹자들은 젊은 세대일수록 떨어지는 문해력의 문제라고 진단하고, 어떤 이는 상대의 사과마저 어떻게든 진의를 의심하려고 하는 곡해와 저신뢰의 사회를 지적한다. 또 어떤 이는 부족함의 개선보다는 응징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대중을 논한다.

모든 이야기가 훌륭한 통찰을 내포하고 있어 또 다른 덧붙임이 사족 같지만, 나는 일련의 반복되는 양상들을 보며 우리사회가 '누적'과 '번역'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한자어와 순우리말 중심의 일상 언어, 거기에 주로 일본에서 이루어졌던 서구 학문의 한자 조어 번역을 통한 전문 용어의 틀은 이미 20년 이상 지난 일이 되었다. 일상 언어와 전문 용어는 대부분 영어를 기반으로 확장되거나 교체되고 있다.



주요 시설물의 안내표지, 식당의 '키오스크' 등이 영어로 기술되어 노년층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를 보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었고, 한 때 '보그체'라고 비웃음을 당했던 주요 단어들을 영어로 대체한 말투는 오히려 전문적 주제의 글이나 학회, 세미나 등에서 더 보기 쉬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가치있는 도시공간 탐색·기록 필요
'언어표현 변화'처럼 장벽 가로막혀


나는 이것이 큰 비약일 수 있지만, 감히 한국어가 한자 기반 한국어에서 영어 기반 한국어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부쩍 이런 해프닝이 많이 드러나는 것은, 영어 기반 한국어에 익숙한 최초의 세대가 그만큼 사회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한자 기반 한국어에서 영어 기반 한국어로 변화하는 동안, '더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영어교육' 외에, 기존의 한국어 체계가 만들어낸 유산들을 적절히 번역하여 제공하여야 한다는 점을 놓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대신 '같은 값이면 배송비 무료'를 외치는 모습은 단지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하기 어렵다. 2022년의 한국사회에서는 누가 들어도 후자가 더 깊게 와 닿지 않는가.

나는 도시의 모습, 도시의 삶을 기억하는 것도 최근 한국어가 마주한 문제와 똑같은 장벽에 부딪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인천처럼 원도심의 역사적 기억을 주요한 문화와 관광 콘텐츠로 재생산하고 있는 도시는 더욱 그렇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시를 끊임없이 현재에 적합하도록 바꾸어가는 동안, 한편에서는 과거의 도시공간과 이를 구성하는 건축물 중 지속적으로 유지하거나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록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천은 이런 작업을 기획할 수 있는 공공문화기관,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열의 있게 수행해줄 연구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도시다. 연구자들은 20세기 초반 인천의 원도심에 존재했던 118개의 건물의 기억을 모아 펼쳐준다. 널리 알려진 인천아트플랫폼 인근의 오래된 건물들 외에도, 많은 기억은 100년 사이의 시간을 이어, 원도심의 기억을 두텁게 해준다.

인천 원도심 존재했던 118개 건축물
매력 찾아내 현재로 끌어올려 향유


그런데 이 책은 사전 같다. 이 장소들의 기억은 어떤 감성적 이끌림을 배제한다. 연구자들은 "지나친 낭만주의나 또는 민족주의로 일종의 역사소비를 부추기는 우를 범하지 않고자" 했다고 말한다.

연구자들이 적정한 자리에서 멈추고,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방향을 지정하는 과욕을 내지 않았기에 각 기억의 매력을 찾아내고, 그것을 다시 현재로 꺼내 오는 것은 지금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 개인의 기호와 선택의 영역이 되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행복한 지점이다.

자칫 지루한 보고서라고 오해받을 수 있음에도 연구자들께서 스스로 멈춰섬으로써, 오늘의 인천사람들이 이 기억을 향유하고, 다시 펼칠 가능성은 압도적으로 더 넓어졌다. 그렇기에 이 기억을 바탕으로 또 다른 '미스터 션샤인'과 같은 100년의 시간의 연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연구자들이 바라는 바와도 같이, 과거의 도시기억을 오늘의 언어와 매체로 번역하는 작업은 지속돼야 한다. 강점기 원도심에 대한 이 연구처럼, 그다음은 산업화의 공간, 현대화를 지나는 대도시의 공간 등에 대해서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떠나고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같은 작업을 반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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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얘기'를 어딘가 남겨놓지 않으면 결국은 아무도 모르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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