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10)] 김윤환 서울연구원 연구원-인천민주화운동사

입력 2022-10-26 19:17 수정 2022-12-08 14:57

사람·사건 재조명… 인천 민주사 오롯이 정리

2022102101000721800034792

k012636128_1
인천민주화운동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인천민주화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도서출판 선인 펴냄. 592쪽. 2019년 12월15일 출간.
모든 단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변한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민주(民主)' 또한 그런 단어 중에 하나 아닐까 싶다.

'민주'는 한때 권위주의적 독재와 군 출신 정권에 맞서는 정의의 표징이었으나, 지난 수년 사이 이 단어는 일부로부터 철 지난 단어로 인식되거나, 때로는 기성세대의 유연하지 못함을 비꼬는 단어로 전용되기도 하였다.

이런 변화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단어의 의미와 가치를 회복하는 일은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어의 의미를 체험한 사람들은 그 숫자도 기억의 밀도도 줄어들고, 그 자리는 그것을 피상적으로 접한 사람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1950년대~1980년대 역사 정리
5·3항쟁·동일방직 사건 재조명
시대별 분류 후 지역사와 매칭


195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인천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정리한 이 책은 저자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첩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짧게는 30년, 길게는 한 세기 가까이 이어진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개인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더는 휘발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수도'와 '정치'라는 역사 서술의 오랜 틀에서 벗어나서 지역을 대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역사를 다시 보는 근래의 흐름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1부에서 4부까지는 시대별로 분류하여 민주화운동사를 지역사로 끌어들인다. 인천이 국가사에 중요한 무대로 등장한 5·3 항쟁과 동일방직 사건과 같은 시점 이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운 사건과 사람들을 재조명한다. 5부에서는 노동, 학생, 여성, 문화, 교육, 빈민, 종교, 재야전선운동으로 구분해, 1부에서 4부까지의 통사를 각 부문의 역사로 다시 정리한다.

기나긴 세월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 담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인천 민주화운동의 큰 맥락이 온전히 구축되고, 많은 분야의 사람과 사건들이 재조명된다. 20세기를 관통하는 한 지역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집대성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집필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 있다.

이 책의 시간은 대부분 1990년대 초반에서 멈춘다. 대부분의 부문에서 199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운동은 지역보다는 산업별로 재편되었고, 종교계는 '87체제' 수립 이후 일정 부분 과거에 비해 거리를 두었으며, 과거 군 출신 정부와 대립하던 재야정치의 상당 부분은 정당정치 내부로 이동하지 못하고 쇠퇴하였다.

여성계, 환경운동, 민중예술 등으로 다각화된 현재와의 연결고리가 마무리 삼아 소개되고는 있지만, 민주화운동은 마치 1990년대 초에 그 생명이 다한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노동·종교계·재야 정치 변화 등
생명 다한것처럼 1990년대 멈춰

이런 기분은 '책'이라는 가장 오래된 매체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배가된다. TV와 같은 영상매체 또한 '레거시 미디어'로 취급받는 시대에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도서는 해당 분야에 관심이 깊은 사람에게도 그 자체로 진입 장벽이 되고 만다.
 

아마 이 책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자신의 관심 분야나 시점을 발췌로 접하고, 그 후에야 전체를 읽으려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오래된 이야기를 담은 오래된 방식을 접하고 있자면, 인류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가장 나은 방법으로 믿었던 책이 과거의 것이 되어가는 것과 2022년을 사는 우리에게 '민주화운동'이 마치 먼 과거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무척이나 유사하게 느껴지고 만다.

그러나 1922년도 아닌 2022년에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적 정치가들이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모습을 접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민주'의 의미가 과거에 박제되어 있어서는 안 되며, 현재에도 끊임없이 '민주'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인천이 이미 과거에 겪은, '민주'를 얻어내 온 시간을 소회하고, 의미를 공유하는 것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이 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현재의 미디어를 통해 현재의 사람들에게 흡인력을 갖는 콘텐츠로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때 이 책은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2022102101000721800034794
그때에 비로소 한 지역의 한 세대가 지켜온 가치는 다음 세대에서 그 시대를 위한 가치로 거듭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민주'를 이루는 길이다.

2022102101000721800034793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