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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천하는 인천책·(7)] 왕지윤 인천보건고 교사-김중미 장편소설 '곁에 있다는 것'

입력 2022-09-14 19:18 수정 2022-12-08 14:57

인천 원도심 사람들, 서로에 곁을 내주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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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인천보건고 교사.

곁에 있다는 것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지음. 창비 펴냄. 384쪽. 2021년 3월 20일 출간
인천 동구 만석동 마을 돌봄 공동체인 공부방 '기찻길옆작은학교' 아이들이, 8월에 개최된 춘천인형극제에서 아마추어 부문 대상을 받았다는 경인일보 기사(9월1일자 6면 보도=[현장르포] 춘천인형극제 대상 '기찻길옆작은학교' 만석동 아이들)를 최근 읽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운영이 중단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느꼈던 답답했던 심정과 공연을 준비하며 삼촌이나 이모로 불리는 공부방 선생님들의 심정이 먹먹하게 전해져 왔다.

김중미 장편소설 '곁에 있다는 것'은 2021년 3월 출간됐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1978년 조세희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기계도시 은강에서 빌려 왔다.

인천 동구 서쪽 바다를 바라보는 만석동이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2000년에 출간된 작가의 대표작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떠올릴 수 있으나, 달라진 주제 의식을 담아내기 위해 분명한 거리 두기를 유지한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구도심 재생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서민들의 주거지가 상품으로 전시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여성노동자 운동의 산실이었던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을 소설적으로 복원한다.

'은강'… 배경 동구 만석동 중심에
서민들 주거지 상품·전시화 개탄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 소설적 복원

총 4부로 구성된 이야기에서 일인칭 시점의 목소리를 내는 중심인물은, 2016년에 열아홉 살이 된 여고 3학년 '지우' '강이' '여울'이다. 은강에서 나고 자란 배꼽 친구들이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와 곁에 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어긋나 있다.

빌라에 사는 지우가 함께 어울리는 타인의 삶에 호기심이 많다면, 판자촌에서 사는 강이는 할머니와 외로이 지내며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아파트에 입주한 여울이는 빈곤한 동네를 내려다보며 수치심을 느낀다.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의 삶을 소설로 쓰려는 지우가 변하지 않는 거리와 골목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면, 어릴 적 엄마를 잃은 강이는 남을 돕는 일로 상처받은 마음을 보상받고 싶어 하고, 교육대학교에 입학하려는 여울은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인정을 받는 사다리를 얻고자 한다.

동네에 관한 중첩된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가난에 대한 상반된 대응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여울이 말한 '가난이 지닌 원심력'이다. 자신은 남남끼리 가족 같은 사이라고 말하는 게 불편하고, 오래되고 익숙한 관계들이 부담스럽다고, 타인을 가족이라 부르는 이들이 좋아하는 인심이나 정(情)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걸 붙드는 진창이 된다고 말이다.

보육원 출신의 보호 종료 학생인 영민이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으려 할 때, "가난한 사람한테는 가족도 짐이야"라고 말한 작은아버지의 변명과도 통하는 이 가난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족쇄다.

대부분이 노동자인 아파트 주민들이 동네 사람들을 다른 부류라며 섞이기 싫어하고, 동네 사람들이 아파트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거리감은 신도시로의 이주와 동네의 몰락을 가속한다.

그러나 동일한 장면에서 지우는, 별은 정면으로 볼 때보다 곁눈질로 볼 때 더 반짝인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주변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잖아.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눈길의 가장자리가 더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우리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고 더 빛날 수 있잖아."(241쪽)

지우는 은강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난한 삶이 선망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주변부임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를 폄하하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별이 어두울 때 더 빛나듯이, 자신들의 미래를 타인의 시선으로 가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아이들 시선… '가난' 상반된 모습
스스로를 폄하하지 않는 당당함

이 소설은 외부자의 비판으로 관철된 고발문학이 아니라, 내부인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따뜻한 연대의 문학이다.

다문화가정과 보호 종료 청년, 장애인과 이주노동자가 모여 사는 지우네 빌라는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서민들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전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은강 패밀리 프로젝트에서 서로의 곁을 내주게 되는지를 차근차근 펼쳐 보인다.

세월호부터 촛불집회까지 크고 작은 현대사적 실제 사건이 언급되는 것 역시, 이것이 남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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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강동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타인과의 어깨동무로 살아남았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공간이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은강동이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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