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바꾼 59년, 수명씨 이야기
길거리에서 부랑아들을 '청소'한다는 명목으로 부산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온 하수명(59)씨는 이후 선감학원으로 이송된 뒤에도 갖은 폭력에 시달리다 탈출했다. 사진은 21일 오후 혼자 식사 준비를 하는 하수명 씨. 2022.11.21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길거리에서 부랑아들을 '청소'한다는 명목으로 부산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온 하수명(59)씨는 이후 선감학원으로 이송된 뒤에도 갖은 폭력에 시달리다 탈출했다. 사진은 구타로 머리에 새겨진 흉터. 2022.11.21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선감학원 탈출하고 3일 동안 동인천역에서 먹을 거 하나 없이 노숙했어요. 일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다 한 식당에서 절 받아줬고 20년 동안 그 식당에서 일했죠. 식당에서 더 일할 수 없게 되자 기술이나 교육이 필요 없는 일거리를 찾아 서울, 성남, 충청남도 등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어요. 그렇게 막노동만 5년정도 하다 지금은 구두닦이로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부랑아들을 '청소'한다는 명목으로 부산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온 하수명(59)씨는 이후 선감학원으로 이송된 뒤에도 갖은 폭력에 시달리다 탈출했다. 사진은 막노동·구두닦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던 그의 거친 손 모습. 2022.11.21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수명씨는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에 있으면서 제대로 배우고 성장하지 못했다. 선감학원을 탈출한 후에도 교육을 받지 못했고 국가, 지자체의 보살핌을 받지도 못했다. 수명씨는 주민등록증도 만들지 못한 채 쉰살이 넘도록 살았다. 취업을 하고 싶어 주민등록증을 만들려 행정기관을 찾아도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평생 국가는 수명씨를 외면했다. 그는 '유령'으로 살아야만 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아무도 절 받아주지 않았어요. 몇 번을 (행정) 기관에 가서 만들어 달라 해도 이유도 제대로 설명 안 해주고 서류가 부족하다면서 무시당했죠. 그러다 보니 누굴 만나도 자신이 없고 결혼도 못하고 가족도 만들지 못했죠. 주민등록증 하나만 있었으면 했어요."
겨우 5년 전에야 충남 아산시청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주민등록증을 만들었다.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국가가 망가트린 인생, 조금만 더 일찍 손을 내밀었다면. 내년이면 벌써 예순이다. 지금 그에게 남겨진 건 혹독했던 지난 인생으로 지칠 대로 지치고 악화된 심신뿐이다. → 관련기사 3면([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2·(2)] "이유 없이 사람 잡아간 책임자들은 꼭 대가 치르게 해야")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사람을 찾습니다▲1956~1982년까지 선감학원에서 일했던 교사 및 직원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1974~1976년, 선감학원 내 양호실에 근무하며 구타당해 머리를 다친 수명씨를 치료해준 간호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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