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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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나이에 선감학원에 끌려가 10여 년간 강제노역·폭행 등에 시달리다 탈출한 고(故)이대준 씨는 선감학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반평생을 바쳤다.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을 맡으며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졌던 그는 지난 2020년 1월 사망했다. 사진은 대준 씨가 생전 자필로 남긴 선감학원의 참상을 고발하는 글과 그의 생전 모습.2022.11.22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아들은 아버지가 늘 가엾고 안쓰러웠다. 뒤엉켜버린 삶의 실타래를 끝끝내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행복보다 불행, 기쁨보다 슬픔이란 단어와 더 가까운 존재였다. 아들의 눈에 비친 고(故) 이대준씨는 한평생을 벼랑 끝에 서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다.
선감학원은 대준씨의 일생을 지독하리만큼 꼬이게 만든, 그를 죽음의 문턱으로 내몬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2년전 세상 떠난 故 이대준씨 아들
자라면서 부친의 비극적 경험 들어
1958년생인 대준씨는 아홉 살 나이에 길거리에서 걸식을 한다는 이유로 단속반에 검거돼 선감학원으로 끌려갔다. 가족이 있는 아이들도 무작위 수집돼 선감도에 격리되는 판국에, 부모가 없던 대준씨는 단속반의 실적을 채울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러나 대준씨는 선감도로 보내지기 전까지 수원시의 한 고아원에서 무탈히 생활하고 있었다. 부랑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진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부랑아로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선감도에 수용된 원아들은 모두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대준씨도 노역에 시달리고, 굶주렸다. 때가 되면 매를 맞고 기합을 받았다. 대준씨는 그렇게 10년 가량을 선감도에서 보냈다. 친구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탈출한 끝에 지옥 같던 섬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당시의 고통스런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해 줄 대준씨는 이 세상에 없다. 간암 투병을 하던 그는 지난 2020년 61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인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숨졌다. 눈을 감던 그날까지 대준씨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응어리는 풀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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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시굴 작업 후 묘역에 국화꽃이 놓여있다.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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