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빠진 경기도 지원의 한계
강제노역과 폭력에 의해 죽거나 목숨을 걸고 탈출하다 익사해 숨진 선감학원 사망 아동들이 묻힌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공동묘역 부지.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를 한 얼마 후 진성(62·가명)씨(11월21일자 2면 보도=[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2·(1)] 부랑으로 떠밀린 형제… 고통의 불은 아직 환하다)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진성씨와 함께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피해자 경환(가명)씨였다.
경환씨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진성아, 혹시 주소지를 너네 집으로 옮겨놓을 수 있을까?" 전화를 사이에 두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진성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거든요. 원래 경환이는 여기 같이 살다가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갔어요. 근데 경기도가 피해자 지원을 한다면서 경기도 거주자만 하겠다고 하니. 이게 올바른가요?"
진성씨와 경환씨 모두 국가가 용인하고 경기도가 운영한 '선감학원' 피해자였다. 60년도 더 지나 겨우 경기도지사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고 마음 속 응어리가 조금 풀리나 했는데, 경기도민인 진성씨는 지원받을 수 있고, 광주광역시에 사는 경환씨는 받을 수 없다.
"나라에서 사과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권유린을 실행한 경기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맞아요. 김 지사가 눈물 흘리고 사과한 것이 진심어린 모습이었다면 경기도민으로만 국한하지 않을 거예요."
1950년대 최헌길 경기도지사와 한미재단 관계자가 선감학원에 방문했을 당시 원생들. /선감역사박물관 제공 |
비단 이들만의 사정이 아니다. 우리가 만난 진성씨 동생 진동(가명)씨, 하수명씨 등 피해자 대부분과 유가족 모두 마찬가지 마음이다. 특히 이들과 관련된 지원과 보상의 문제는 현재의 삶과도 직결된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정신적, 신체적, 인지적 힘을 기르는 성장기를 선감학원에서 보냈다. 보통의 아이들이 정규교육을 이수하고 운동장을 뛰어놀며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때, 이들은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강제노동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그 기억이 영구적 상처로 남아 대인관계 형성 등 사회를 살아 나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고립감, 불안감 등 만성적인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10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10.20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공동취재 |
안산시 단원구 경기창작센터 내 선감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선감도의 과거 모습.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하지만 10명 중 6명이 경기도 밖에서 거주하는 현 상황에서 논란은 계속될 것이고, 피해자들의 상처는 더해질 것이다.
이렇게 진실규명과 피해지원이 더딘 이유는 이 모든 과정에 선감학원을 만들고, 경기도를 운영자로 명령한 '국가'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0년부터 선감학원 피해지원 논의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올라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 행정안전부 장관, 경기도지사에게 지원 방안 마련을 촉구했고 지난 10월 진화위도 진실규명과 함께 피해자 지원책 마련을 국가의 몫으로 권고했다.
여전히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그날 속에 살고 있다. '혼자 길 위에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잡아 가둔 국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관련기사 3면([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2·(4·끝)] 우울·불안 고통의 나날… 치유 사업은 2020년 사실상 멈춰)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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