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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2·(4·끝)] 우울·불안 고통의 나날… 치유 사업은 2020년 사실상 멈춰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기자 jebo@kyeongin.com
입력 2022-11-23 20:47 수정 2023-01-16 10:47

국가 빠진 경기도 지원의 한계

형과 함께 5년 동안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진동씨(11월21일자 3면 보도=[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2·(1)] 모진 역랑에 쫓기듯 살아온 삶… "국가폭력 분명히 알려지길")는 혼자 있을 때 문득문득 "죽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감학원의 지옥 같은 기억이 자꾸만 진동씨를 괴롭혀서다.

일주일 동안 창고에 갇힌 기억 때문에 불을 켜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진성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기진맥진한 채로 쨍쨍한 햇빛이 내리쬐는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국가폭력이 낳은 피해자들의 일상이다. 수십년을 고통 속에 살지만 누구도 돌봐주지 않은 그들의 파괴된 일상, 그렇게 피해자들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60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피해자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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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선감학원에서 지도를 받고 있는 원생들의 모습. /선감역사박물관 제공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화위)는 진실규명에 앞서 선감학원 아동인권 침해사건 신청인 중 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경제, 심리적 트라우마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피해자 대부분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 그래픽 참조

선감학원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묻는 조사(중복응답 가능)에서 89명이 '선감학원에 대해 생각하면 괴로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거나, 너무 예민해질 때가 있다'는 응답도 67명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우울·불안하다는 생각을 하거나, 당시 기억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등 신체적인 고통을 호소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0명 중 2명(20.2%)이 일주일에 5회 이상 술을 마신다고 답했으며 피해자 상당수가 불면증, 악몽 등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수면장애 증상을 묻자 54명이 불면증을 토로했고 47명은 악몽, 33명은 신체적 통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응답자도 절반을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4회 이상 시도했다는 이들이 17명으로 17.3%에 달했다.

99명중 89명 "생각만 해도 괴로움"
54명 불면증·47명은 악몽 고통 토로

선감학원 기획 (16)
아홉 살 나이에 선감학원에 끌려가 10여 년간 강제노역·폭행 등에 시달리다 탈출한 고(故)이대준 씨는 선감학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반평생을 바쳤다.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을 맡으며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졌던 그는 지난 2020년 1월 사망했다. 사진은 대준 씨가 생전 자필로 남긴 선감학원의 참상을 고발하는 글과 그의 생전 모습.2022.11.22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이미 지난 2020년 경기도의 선감학원 사건 피해 사례 조사에서도 피해자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됐는데, 응답자의 96.7%가 사망자를 목격했고 48.4%는 시신 처리에 동원됐다고 답했다.

선감학원을 빠져 나왔지만, 피해자들은 교육 시기를 놓쳤고 응답자의 85.8%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으로 조사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응답자의 37.6%이며 선감학원에서 당한 피해로 장애가 생겼다는 응답률도 30%였다.

응답자 10명 중 7명(76.1%)이 소득이 낮은 직업군에 속했는데, 운전 등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돌아다니거나 혼자서 하는 종류의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지부진했던 경기도 지원정책, 정부 지원도

경기도는 2020년 4월부터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신고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이후 선감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경기연구원에서 선감학원 사건 피해 사례 조사 분석 보고서도 냈고 피해자 지원도 시작됐다.

의료 지원은 취약계층 의료비 지원사업 중 일부 예산으로 이뤄지는데, 1인당 연 500만원을 지원하고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378명이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지 않는다면, 하루를 꼬박 잡아 경기도의료원을 찾아야 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의료지원이 절실하지만 일을 하고 있어 사실상 경기도 외 거주자라면 지원을 받기 어렵다.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어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하기 때문에 의료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진동씨는 의료지원 받는 걸 포기했다. 시간이 없어서다. 그는 할 수 있다면 가까운 동네 병·의원에서도 지원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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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르고 선감도에 끌려가 강제노역과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렸던 까까머리 원생들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 머리가 희끗한 나이가 돼서도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14명이 선감도에서 숨진 원생들의 묘역을 정리하다 남긴 기념사진. /고(故)이대준씨 유족 제공

의료지원은 경기도의료원만 받아
대부분 생계·거리 이유 상담 포기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정서안정지원사업은 사실상 2020년 이후 멈춰 있다. 2020년에 시범사업으로 추진됐는데, 찾아가는 상담실 지원을 받은 이들은 10명 내외에 불과해서다. 2천만원도 채 되지 않는 예산으론 실질적 지원이 어렵다는 게 경기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는 정서안정 동영상 제작으로 사업이 변경됐다.

동영상 4편을 만들어 피해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만성적인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들의 치유에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기도는 내년도 본예산에 14억을 대폭 확대 편성했다. 이마저도 지원 조건이 경기도 거주로 한정되는 등 한계점이 드러나며 논란이 크다.

선감학원을 위한 경기도 지원사업에 국비가 지원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나마 최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서 선감학원 지원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를 두고 행안부는 "내부적으로 검토는 하고 있지만, 선감학원 사건은 행정안전부뿐만 아니라 법무부 등 여러 정부 부처에 연관돼있어 일단 진화위의 권고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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