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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특별기획 PART2] "선감학원 피해자, 제주 4·3센터처럼 치료 필요"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기자 jebo@kyeongin.com
입력 2022-11-23 20:48 수정 2023-01-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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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3트라우마센터에서 진행한 생존희생자 위로사업(왼쪽)과 미술 치료. /4·3트라우마센터 제공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아직도 원생 시절 받았던 고통과 상처를 호소한다. 우리가 만난 진성(62·가명)씨, 진동(60·가명)씨, 하수명씨는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故 이대준씨 처럼 온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국가의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경우도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대체로 가슴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주기적인 심리 치료를 통해 구멍을 메꾸고 채우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피해자들은 퇴소 이후 제대로 된 심리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인격이 형성되는 성장기, 폭력과 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만큼, 보다 전문적이고 섬세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치유대상 1만7754명중 1064명 등록
트라우마에 상처 스스로 고백 '효과'
"국가 센터 설립·특별팀 구성해야"

정찬승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은 선감학원 피해자들처럼 성장기 학대를 겪은 이들은 만성 트라우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정 위원장은 "트라우마를 겪으면 당시엔 본인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해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때는 살아남고 적응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이 나타난다"며 "당시 겪었던 폭력이나 위협이 원치 않는데도 계속 떠오르거나, 사소한 자극에도 놀란다. 충격적인 사건에 일종의 셧다운으로 자기감정을 차단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때 치료가 안 되고 오랜 시간 마음의 상처가 쌓이면 술, 담배 같은 중독성 물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자해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 중 고립된 분들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친 부분을 고려해 장기적인 의료,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특화된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 치료를 병행하면 장기간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 60~70대라는 나이에 맞는 치료가 시급하다. 치료비 지원으로 안정적인 치료를 지원하고 피해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경제적 지원을 하며 명예회복을 도와줘야 한다"며 "국가가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하거나 기존 트라우마센터를 기반으로 특별팀을 구성해 피해자에 특화된 치료,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제주에 설립된 4.3트라우마센터가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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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3트라우마센터에서 진행한 생존희생자 위로사업(왼쪽)과 미술 치료. /4·3트라우마센터 제공

제주 4.3사건 유족 박정수(87)씨는 2020년 6월 처음 '4.3 트라우마센터'를 방문한 후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70년이 넘게 꺼내지 못한 고통과 상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4.3 때 박씨 아버지는 총살로 희생되고 오빠는 행방불명돼 현재까지 찾지 못했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도 정신을 놓았다. 박씨는 15살의 나이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박씨는 70여 년 동안 우울증과 고립감, 자괴감 등을 느끼며 고통 속에 살았다. 주변 지인의 권유로 센터에 등록해 심리 치료를 시작한 첫해에 박씨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겪고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피해자를 만나며 마음을 열었다.

박씨는 "4.3에 대해 말도 꺼내기도 싫고 생각도 하기 싫었다. 센터에 와서 다른 피해자분들과 얘기도 해보니 나만 그런 증상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같이 웃고 울기도 하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씻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4 .3트라우마센터는 제주특별자치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4.3사건 생존희생자와 유족을 치유하기 위해 심리상담 및 치료를 시작한 데서 출발했다. 국가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유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였다. 제주센터에 따르면 4.3 사건 트라우마 치유 대상자는 1만7천754명에 달한다. 특히 생존희생자 39.1%는 PTSD 고위험군이고, 41.8%는 전문의 상담이 필요한 '중등도 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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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시굴 작업 후 묘역에 국화꽃이 놓여있다.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국가가 운영하는 트라우마센터로 격상된 건 2017년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다. 2019년 행정안전부가 2020년도 정부 예산안에 4.3 트라우마 치유 위탁사업 예산을 반영했고, 이듬해 4.3평화재단이 사업을 위탁받아 센터를 설립했다. 2021년엔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설립 관련 법률이 의결됐다. 이에 현재 4.3트라우마센터를 2024년에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로 승격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센터 개소 이후 등록자는 매해 늘어나고 있다. 2020년 475명, 2021년 783명, 현재는 1천64명이다. 다양하고 특화된 프로그램이 진행되다 보니 만족도가 높은 게 이유다. 개인 상담, 집단 상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피해자와 관계 형성에 주력했다. 또 문학치유, 원예치유, 음악치유 등 특화된 프로그램을 진행해 관심도 높였다. 이야기마당처럼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센터 관계자는 "4.3 사건이 벌어진 지가 70년이 넘었다 보니 생존희생자분들과 유족분들 모두 70대 이상의 고령이시다. 그래서 고령의 피해자분들에게 효과가 있는 재활 프로그램을 구성해 진행하고 있다"며 "특히 원예 치유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 농촌 지역이다 보니 흙을 만지고 나무를 가꾸고 하는 프로그램을 선호하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주 금요일마다 4.3 이야기마당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피해자분들끼리 서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자연스럽게 고백하고 털어놓으면서 울고, 웃고, 공감한다. 피해자분들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하신다"고 덧붙였다.

정찬승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도 피해자 치료에 있어 정부가 평생 지원을 할 필요성이 있다며 "피해자분들이 자기 상처를 스스로 고백할 때 트라우마 치료가 효과적이다. 같은 피해를 겪은 피해자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공유하면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뒷받침했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정치부 공지영 차장, 신현정·고건 기자, 사회교육부 배재흥·김동한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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