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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신공]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의 역사/ 하늘에 올린 기원(祈願)

경인일보 발행일 2015-11-10 제18면

군 수령이 직접 제사 ‘안산 여단’ 기록 남아

염병 막고 처녀·총각 귀신 위로 제단
수리산계곡 우사단터는 軍시설 통제


우사단터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
우사단터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 /원일중 제공
올해는 어느 해보다 가뭄이 심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뭄이 심하면 옛날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려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 이렇게 기우제를 포함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조선 시대에 제사와 관련한 시설은 1묘(廟), 1사(社), 2단(壇)이 있었습니다. 이는 문묘(文廟), 사직단(社稷壇), 성황단(城隍壇, 城隍祠), 여단(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에 안산에 대한 제사 시설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사묘】 사직단(社稷壇) 군 서쪽에 있다. 문묘(文廟) 향교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사당이 둘 있는데 하나는 군 서쪽 21리 되는 곳에 있고, 하나는 군 서쪽 32리 되는 곳에 있다. 여단(壇) 군 북쪽에 있다.



이 중에 여단은 관아 북쪽에 있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옛 안산 관아의 북쪽인 수암동 산1-3번지 지장골 뒷산의 정상부에 단을 만들었던 흔적과 기와 조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여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단은 여제단(祭壇)의 준말로, 제사를 못 받는 귀신이나 유행병으로 죽은 귀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단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여단의 제사가 없었는데, 1401년(태종 1) 당시 좌찬성이었던 권근의 건의에 따라 여단을 쌓고 여귀(鬼)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제사는 1년에 세 차례 지냈습니다. 봄에는 청명일(淸明日), 가을에는 7월 보름, 겨울에는 10월 초하루에 지냈다고 알려집니다.

안산에도 여단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안산군읍지’에 안산군 일대에서 발생하는 염병의 전염을 막고 혼인을 못 하고 죽은 처녀, 총각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단을 설치하고 군의 수령이 직접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안산 토박이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안산 군수가 직접 말을 타고 제사를 올리러 갔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제사 공간인 우사단은 비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기우제를 올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합니다.

한편 1414년(태종 14)에 우사를 위한 제단으로 우사단을 설치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후 ‘세종실록’에도 정비를 거듭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각 지역의 우사단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각 지방에도 기우제를 올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산의 우사단터는 원당사에서 수리산 정상으로 향하는 계곡 쪽에 있습니다. 수리산 정상의 약 8~9부 능선에 있다고 이 지역 토박이 주민들은 말합니다. 현재는 군(軍)에서 운영하는 탄약물폭파처리장이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유적지를 돌보지 않는 것은 마치 자신의 지나온 발자취를 스스로 덮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훗날 후손들에게 이 사연 많은 우리의 발자취를 남겨 주지 않는다면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신대광 원일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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