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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신공]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의 역사/ 안산의 또다른 이름 연성(蓮城)

경인일보 발행일 2015-11-17 제18면

‘고려 귀족’ 안산 김씨 김정경
조선 개국공신 여생은 고향서

망해정터에서 바라본 수암봉
망해정 터에서 바라본 수암봉. /원일중 제공

수암봉 일대 바다조망 ‘망해정’ 지어
세종1년 75세 삶 마감 ‘연성군’ 봉해


조선이라는 나라는 세워졌지만, 아직 나라의 기틀이 다져지지 않아 혼란한 세월이 이어진 시기 안산의 한 인물을 만나봅니다.

김정경, 그는 안산 김씨로 현재의 수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고려 말 군부사총랑(軍簿司摠郞)이라는 군인이었는데, 이는 병부(兵部) 4품이나 되는 높은 벼슬입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혼란기에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동참하는데, 군인이었던 그가 자연스럽게 이성계 측근으로 지지 세력이 됐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후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봉됐습니다.



또한 1400년(정종 2년) 방간의 난(일명 ‘박포의 난’ 또는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한성부윤(현재 서울시장)이었던 김정경은 난을 진압하고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됩니다.

좌명공신(佐命功臣)은 태조 이성계의 형제들이 왕권 쟁탈 싸움에서 5번째 아들인 이방원(태종)이 바로 위에 형이었던 이방간을 몰아내고, 사실상 왕으로 등극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그를 도운 신하들에게 내린 공훈입니다.

그리고 김정경은 1410년(태종 10) 명나라 황제나 황후 생일에 파견하는 축하 사절인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직접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 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김정경은 고향인 안산에서 여생을 마칩니다.

안산에 거처하면서 그가 지었다는 정자가 있는데, 지금도 그 정자를 ‘망해정(望海停)’이라고 부릅니다. 옛날에는 바닷물이 내륙 쪽으로 깊이 왔기 때문에 현재의 수암동 일대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정경은 그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자적하게 말년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당시 심었다는 은행나무 3그루 중 1그루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는 세종 즉위 1년인 1419년 75세의 긴 삶을 마감하는데 당시로서는 장수한 셈이죠. 그는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졌는데, 그 연성(蓮城)이 당시 안산을 지칭하는 다른 말이었답니다.

안산김씨 집안은 고려 시대 명문 귀족 가문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또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공신이 돼 대대로 부와 권력을 누렸을 것입니다. 한 가문으로 본다면 영예로운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죠.

그렇지만 당시 백성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귀족가문의 이야기이고 자신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루하루 굶지 않고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꿈을 가진 대다수의 농민이었던 그 시절 백성들에게는 넘볼 수 없는 ‘높은 집안’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급변하는 왕조 교체기,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과 가문의 명운을 걸고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었던 김정경의 길고도 짧은 인생을 통해 굽이굽이 흘러 온 안산역사의 한 자락을 되돌아봅니다.

/신대광 원일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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