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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1호 창리 선돌. /대지중 제공 |
선사시대 유산 추정 원삼면 등 5곳서 발견
무덤앞·농사풍년 기원·동네입구 장승역할선돌(立石)은 말 그대로 서 있는 돌이라는 뜻입니다. 선돌은 마을 입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돼 있는데 그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에는 선돌이 시간의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몇천 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선돌이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깊은 믿음 때문입니다.
용인지역에도 다섯 곳에 선돌이 남아있습니다. 원삼면 사암리, 원삼면 두창리, 남사면 창리, 포곡면 유운리, 양지면 주북리 등이 대표적입니다. 돌을 고여 만든 고인돌이 무덤이나 제단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돌도 세운 의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용인 지역의 선돌도 예외는 아닙니다.
선돌은 어느 곳에 세워져 있느냐에 따라 기능이 달라집니다. 고인돌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선돌은 무덤과 관련된 어떤 기능을 했을 것이고 논밭이나 낮은 산에 있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농경과 관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있는 경우는 장승이 했던 역할인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기능을 했을 것입니다.
용인지역의 선돌을 성격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무덤과 관련된 선돌의 기능인데 이는 오늘날 무덤에 세우는 망주석의 역할을 했습니다. 무덤을 표시하거나 무덤의 영혼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양지면 주북리 선돌이 이런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경우라고 여겨집니다.
둘째, 선사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먹거리이기에 선돌도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선돌이 농사의 풍요와 관련된 예로는 전북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등 마을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을 이름을 입석, 입암이라고 했던 것은 선돌 축조가 농경 사회의 풍요를 기원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같은 기능을 했던 용인지역의 선돌로는 사암리, 창리, 두창리 선돌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수호적 기능을 하는 선돌입니다. 수호의 기능은 벽사적( 邪的) 기능과 수구(水口)막이의 기능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벽사적 기능은 지금도 마을 입구에 세워지고 있는 장승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수구 막이 기능은 홍수를 막으려는 목적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용인지역에서 벽사적 기능을 했던 대표적인 선돌이 유운리 선돌이고, 수구막이 역할을 했던 것은 주북리 선돌로 볼 수 있습니다.
선돌은 선사시대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없으나 실제로 언제 세워졌는지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유운리와 사암리 선돌은 인근에 고인돌이 있기도 하고 선사시대 유물이 주변에서 발견돼 선사시대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주북리 선돌은 그 모양으로 보았을 때 근래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커 고인돌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전에 만들어졌든 가까운 시기에 만들어졌든 조상들의 혼이 담긴 유산임은 틀림없습니다. 어느 지역에 살고 있든 주변에는 이름 모를 선돌들이 서 있을 겁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간절함이 담겨있을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선돌을 만나면 가만히 서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과거를 알고 선조들의 혼을 이해할 수 있고 문화재도 지키는 방법은 아닐까요?
/우장문 대지중 수석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