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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 놀라움 없는 마술 ‘조선마술사’

이대연 기자 발행일 2016-01-01 제18면

김탁환 원작·김대승 연출 기대감
소재·배경 괴리 세트만 눈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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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쥐었다 펴면 새가 날아간다. 여인이 그림이 되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가 하면, 위험한 칼날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 나타난다. 마술의 세계는 놀라움의 세계다. 마술이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즐거운 까닭은 속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설득력 때문이다.

마술의 진실은 눈속임의 방법에 있지 않으며 경이와 탄성, 그리고 즐거움에 있다. 조선시대 의주의 화려한 유곽 물랑루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선마술사’는 화려하면서도 아찔한 마술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배경은 참담하다. 조선사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인 병자호란 직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민중들이 살해되거나 끌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기아로 죽어간다. 운좋게 돌아온 여성들은 환향녀라 천대받고 조선의 공주는 첩으로 팔려간다. 관리들은 여전히 암투와 벼슬놀이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술은 단순한 오락이나 도피라기보다는 간절히 원하는 기적이며 희망일 것이다. 그러니 마술처럼 아름답고 절박한 사랑 이야기 하나쯤 피어날 법도 하다. 그것이 김대승 감독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번지점프를 하다’(2000), ‘혈의 누’(2005), ‘가을로’(2007), ‘후궁:제왕의 첩’(2012) 등 김대승 감독의 필모는 화려하다. 게다가 원작은 소설가 김탁환과 기획자 이원태가 의기투합해 만든 창작집단 원탁의 동명 소설이다. 이쯤 되면 기대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재와 배경은 괴리되어 있고 연출은 힘이 없다. 이야기는 느슨하고 에피소드는 파편화되어 있는데다가 인물들은 기능적으로 소모된다. 감정선은 따라가기 어렵다. 곽도원과 이경영의 카리스마도 맥락이 없어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귀몰(곽도원)의 분노는 과도하고, 안동휘(이경영)의 애정은 순진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물랑루의 화려한 세트만 눈에 남는다.

마술이 무대 위와 뒤편의 잘 짜여진 협업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영화의 서사는 인물들 상호 간 긴밀함과 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유기성으로 이뤄진다. 노련한 김대승 감독이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잠시 길을 잃은 것인지도. 그렇기에 더욱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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