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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 흩어진 퍼즐의 내면 '나를 잊지말아요'

경인일보 발행일 2016-01-15 제16면

십년치 기억 사라진 남자 '미스터리 멜로'
모호한 캐릭터·과도한 깜짝반전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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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파출소 안으로 들어온다. 눈빛은 텅 비어 있고 걸음은 똑바르지 못하다. 실내는 소란스럽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경찰에게 다가간다.

그는 지금 실종신고를 위해 이곳에 왔다. 건조하게 실종자의 인상착의를 묻는 질문에 사내는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이번에는 실종자와의 관계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사내가 대답한다. '본인'이다.

가벼운 멜로가 되기에는 무거운 오프닝이다. 이어지는 사내의 독백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자신을 알고 있을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외침이다.

신인 이윤정 감독의 '나를 잊지 말아요'는 멜로와 미스터리를 축으로 하여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개봉했던 '뷰티 인사이드'가 수시로 몸이 바뀌지만 동일한 기억을 지닌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면, '나를 잊지 말아요'는 몸은 그대로인데 기억이 사라진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십년 치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지만 알고 보니 집이 있고 변호사라는 멀쩡한 직업도 있다. 몇몇 난처한 점을 제외하곤 다행히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그렇게 약간은 불편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석원(정우성)은 우연히 알게 된 진영(김하늘)과 사랑하게 되면서 미스터리한 퍼즐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퍼즐은 조각난 사랑일지도 모르고, 파편화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석원 자신일지도.

'나를 잊지 말아요'는 미장센 영화제에서 상영된 25분짜리 단편을 장편으로 제작한 것이다. 장편과 동일한 오프닝으로 시작하여 기억을 잃은 남자(김정태)의 공허하고 황량한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단편에 없던 진영이라는 인물이 삽입되고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인 외피를 입으면서 영화가 지닌 주제의 무게감은 반감한다.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석원과 진영의 캐릭터도 모호하고 산만하다. 깜짝 반전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면서 이전까지의 구성이 허술하게 직조된 점도 아쉽다.

내 기억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존재가 그저 심술 맞은 외장하드로 왜곡되어 읽히는 것은, 기억이 자기 정체성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첨단 정보기술의 시대에 기억상실이 더 이상 멜로의 소재가 될 수 없다는 반증인지, 아니면 단지 만듦새 때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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