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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의 영화 톡 세상 톡] 먹고 살기의 두려움: '잡식가족의 딜레마'

경인일보 발행일 2016-02-19 제18면

무관심했던 돼지 '생명체' 인식
'먹어도 좋은가' 식단결정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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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침대 위에 누워 있다. 그 위로 모빌이 떠다닌다. 얼룩말과 얼룩소 등 동물 인형이 매달려 있다. 엄마가 젖을 먹인다. 양껏 먹은 아기는 다시 잠이 든다. 천진난만한 아기의 얼굴 위로 엄마가 흥얼거리는 자장가가 흐른다.

그리고 곧 잠든 돼지새끼들의 모습이다. 어미의 젖을 빨다가 잠이든 새끼들이 평화롭다. 화면이 바뀌면 다시 잠든 아이의 얼굴이다. 감독의 시선 속에서 새끼돼지와 자신의 아기가 교차된다. 점차 돼지와 사람이 겹쳐진다. 그리고 지금껏 무관심했던 돼지가 생명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동물원의 새끼호랑이를 다룬 '작별'(2001)과 로드킬을 소재로 한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를 통해 지속적으로 동물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던 황윤감독이 지난해 선보인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돈까스이면서 살아있는 돼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돼지에 대한 최초의 목격은 2010년 구제역 파동 때였다. 그러나 그건 살아있는 돼지라기보다는 거대한 구멍 속에 갇혀 죽어가는 돼지였다. 그리고 대규모로 돼지가 사육되는 공장형 축사에서 그녀가 본 광경은 살풍경하다.



단순한 호기심은 질문으로 바뀐다. 먹어도 좋은가? 아니라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보다는 환경이 좀더 나은 생태적 농장을 찾아가지만 질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설연휴를 맞아 지난해 놓친 영화들을 찾아보다가 마주친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힘주거나 무게를 잡지 않는다. 친근하게 감독 자신의 가정과 자신이 방문한 농장을 담아낸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서 마주치는 것은 생명에 대한 무관심이다.

밥상 위에 잔득 올라온 고기들 앞에서 난처하기 이를데 없었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미각과 포만의 쾌감 뿐 아니라 삶의 지속이라는 단순하지만 명백한 명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감독처럼 당당히 채식주의를 선언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먹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환되어 다가온다. 짐승을 사냥하며 감사와 사죄의 기도를 올렸다는 아메리카 인디언 전사들의 일화가 떠오른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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